최저임금위원회, 결정구조
법에서 규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왜 정부의 성향에 따른 인상률을 보여줄까?? 각 노사 위원회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구조를 알아보자.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경험적 사실, 취약 근로자 고용 감소와 미준수율 현황, 저임금 근로자 가구의 취업자 구성, 다른 복지제도와의 역할 분담 상황 등 주요 검토 사항은 진지하게 고려하지도 않을뿐더러, 경험적 결과를 통해 생각을 바꾸는 이도 없는 진영 논리가 관철되는 싸움터로 묘사되고는 합니다.
이는 최저임금 정책을 이해 당사자인 노사가 결정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됩니다. 위원회 방식이 채택된 것은 1986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이 주도해 노사와 공익위원이 함께 참여한다는 모양새를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군사독재 치하 집권 여당으로서는 논의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더라도 정부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으리라 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최저임금의 위원회 = 노사?
그러나 이후 정치 상황이 크게 변했고, 민정당이 주도해 만들어놓은 구조는 이제 노사가 이전투구를 통해 나라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시장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가격을 강제하면서까지 약자를 배려하는 재분배 정책을 노사가 임금 협상하듯이 결정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개별 사업장의 임금 결정이라면 노사가 교섭력에 의해 경영 성과를 나누어 갖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국가 정책을 노사가 나누어갖듯이 결정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최저임금이 재분배 정책이라는 것은 임금을 시장에 맡겨두었을 때에 비해 임금을 조정함으로써 손해를 보는 사람과 이득을 보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재분배 정책은 정부 정책 중에서도 가장 책임 소재가 예민한 사안인 만큼, 정부는 목표가 무엇이고 그에 따른 어떤 조치를 취했으며 그 성과는 어떠한지를 명확히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은 고용이 불안정한 저임금 근로자와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저숙련 근로자입니다. 지금처럼 노조가 대표하는, 고용이 안정적으로 보장된 근로자들이 임금 협상 수단으로 최저임금 제도를 활용하는 구조에서는 고용이 불안한 저숙련 근로자와 미취업자들을 배려하기 어렵습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직자들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는 노사가 최저임금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합리화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인선 권한 = 정부 >> 정부 성향에 따른 최저임금 인상률 >> 정부의 생각과 일치
정권의 성향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률이 큰 폭으로 차이나는 것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 인선 자체가 정부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익위원의 선정은 심의 진행 방식과 인상률에 정부가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로입니다. 그리고 심의 과정에서 다양한 경로로 정부와 공익위원 간의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현재의 구조를 요약하면, 정부의 대략적인 의지와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노사가 전국 단위로 임금 협상을 하는 형태입니다.
이런 구조를 잘 나타내는 것이 대선공약에 등장한 최저임금 인상률입니다. 법에서 규정한 대로 독립적인 위원회로 운영되고 있다면 대통령 후보가 이를 선거공약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일이며,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게 결정되었다고 대통령이 사과할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후보들이 대놓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본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최저임금 결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원치적으로 정부가 빈곤의 재분배라는 목적을 가지고 임금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노사가 아닌 정부가 책임지고 결정해야 될 일이지만 현재의 구조는 정부가 뒤로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책임은 물론 설명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되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매년 심의가 끝나면 공익위원 대표가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몇 퍼센트, 심지어는 협상 촉진을 위해 몇 퍼센트 하는 식으로 대략적인 설명을 하지만, 그 숫자가 무슨 근거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뒷받침이 없습니다. 그냥 선언이지요.
다른 나라의 사례
영국은 정부가 위촉한 전문가 위원이 노사의 의견을 청취하고 현황을 분석해 인상률을 건의하면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구조입니다. 전문가 위원회와 정부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인 셈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거시 변수를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결정하되, 산업과 지역별 생산성을 고려해 차등화한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나 네덜란드는 공식적인 노사 의견 청취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입니다. 미국의 경우 행정부가 인상 필요성이 적거나 경제 여건이 따르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1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동결한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노사 협상에 맡겨놓은 상황인데, 이는 다른 남미 국가들이 택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최저임금이 취약계층을 돕는 수단으로 광고되지만 실제로는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전체 임금을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됩니다.
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노사 단체의 전국 단위 임금 협상처럼 악용할 수 있습니다.
책 : 정책의 배신,윤희숙 / 발췌, 정리